🌟 《그 날이 알고 싶다》 행사 소개
《그 날이 알고 싶다》는 차별과 불평등에 관심 있는 청년들이 함께 모여 인권·차별 관련 기념일이 지정된 배경과 그 의미가 무엇인지 새기며, 그러한 기념일과 관련된 차별·불평등 이슈에 대한 생각과 이야기를 자유롭게 나누는 차별에 맞선 별의별+ 커뮤니티의 <행사>입니다.
🌟 국제 이주자의 날 소개
국제연합(UN) 총회는 1990년 12월 18일 ‘모든 이주 노동자와 그 가족의 권리에 관한 협약’을 채택했다. 이 협약의 체결을 기념하는 날로서 전 세계 이주 노동자를 단순한 노동력으로 간주하지 않고 내국인과 동등한 자유를 가질 수 있도록 그들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한 ‘국제 이주자의 날’을 2000년 12월 UN 총회 결의를 통해 지정하였다. (이주 노동자의 권리에 관한 협약 체결을 기념하는 날이기 때문에 이주노동자의 날로 불러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국제 이주자의 날’을 기념함으로써 전 세계 이주 노동자들의 노력과 공헌 그리고 그들의 권리를 인식하고자 한다.
🌟 동등한 인간으로서 ‘이주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
1) 이주 노동자란 누구인가?
‘이주 노동자’란 노동을 목적으로 국경을 넘어 이주한 사람을 칭한다. 우리나라에서 외국인의 고용을 규율하는 법률의 명칭이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이라는 것으로부터 알 수 있듯, 법적으로는 ‘외국인근로자’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외국인근로자와 고용사업주는 노동시장에서 외형적으로는 대등한 관계에서 근로계약을 체결한 당사자이다.〘1〙 외국인근로자는 고용사업주의 필요에 따라 국가의 승인(MOU체결국에 대한 외국인력 도입과 고용허가)을 받고 적법하게 우리나라에 입국하여 우리 사회에서 정당한 노동인력으로서의 지위를 부여받은 근로자이다.〘2〙
우리나라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규모는 2022년 기준으로 84만 3천여 명(합법적 체류 중인 자 기준)이다. 같은 기간 내·외국인 전체 취업자 수가 2,808만 9천여 명임을 고려하면, 외국인 노동자 수는 전체 취업자의 3% 수준이다. 국내 외국인 취업자 현황을 산업, 회사 규모별로 따져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산업별 현황을 살펴보면, 제조업에 종사하는 비율이 다른 산업보다 압도적으로 많다. 외국인 취업자의 43.9%가 ‘제조업’에 몰려 있는데, 이는 그 다음으로 많은 ‘도소매·음식·숙박업’의 비중(18.7%)보다도 2배 이상 많은 규모이다. 다음으로 회사 규모별 취업자 수를 살펴보면, 외국인 노동자 중 69.4%가 ‘직원 수 30명 미만’ 회사에서 일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를 세부적으로 나눠보면 소기업에 해당하는 ‘10~29명’이 가장 큰 비중(28.5%)을 차지하고 있다. 출처: 임주현, 박나리, "외국인 노동자가 내국인 일자리를 빼앗고 있나 [팩트체크K]," KBS뉴스, 2023년 6월 3일. |
❝국제사회에서는 ‘이주 노동자’라는 표현을 사용하길 권하고 있다. ‘외국인’이라는 표현이 내국인과 외국인이라는 구분을 내포하고 있으므로 ‘이주노동자’란 표현이 보다 평등한 의미를 담을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허가된 사업장을 벗어나거나 허가된 체류기간을 넘긴 이주민을 흔히 ‘불법체류자’라고 부르곤 한다. 이들이 출입국관리법상의 체류기간을 어긴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의 노동이나 이들의 삶이 불법인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출입국관리법상 등록이 되지 않았다는 의미로서 ‘미등록이주민’라는 용어가 사용되기를 바란다.❞〘3〙
2) ‘산업연수생제도’에서 ‘고용허가제’로
2004년 고용허가제가 시행되기 이전에는 ‘산업연수생제도’가 있었다. 1993년도에 도입된 산업연수생제도의 목적은 “중소기업은 인력난을 완화하고 연수생에게는 기술 기회를 습득 하여 국가 간의 상호 협력을 증진하는 것”이었다. 연수생이 한국에서 일하며 기술을 습득한 후 본국으로 돌아가면, 연수 생 송출국은 경제 발전에 도움을 얻을 수 있고 한국은 내국인 이 기피하는 업종에 부족한 인력을 구할 수 있기에 서로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실상 연수생들은 3D업종(더럽고dirty, 어렵고difficult, 위험한dangerous 분야)에서 일하면서 기술을 배우기는커녕 단순 노동만 반복했다. 게다가 그들은 ‘노동자’가 아니라 ‘연수생’이기에 근로기준법을 비롯한 노동관계법의 보호를 받지 못했고 최저임금도 보장받지 못했다. 대부분의 연수생들은 기술은 배우지 못하고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2000년에 실시된 중소기업연구원의 한 조사에 따르면 “연수생의 평균 근로 시간은 주당 56.9시간으로 주 6일을 기준으로 하면 하루 평균 약 9.5시간을 일했고”, “이들의 임금은 한 사람당 평균 737,300원”이었으며 이는 내국인 근로자의 초임인 949,000원보다 적었다. 출처: 우춘희, 깻잎 투쟁기: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한 1500일 (교양인, 2022), 113-114. 결국 2003년 ‘외국인 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이하 외국인고용법)’이 제정되었고 2004년부터 지금의 ‘고용허가제’가 시행되었다. 고용허가제를 통해 이주 노동자는 브로커가 아닌 정부 기관의 취업 알선을 통해 들어오게 되었고, ‘노동자’로서 우리 사회가 보장하는 기본적인 법적 보호를 받게 되었다. 산업연수생제도는 2007년부터 연수생 추가 도입이 중단됨으로써 사실상 폐지되었다. 고용노동부 홈페이지 내 용어사전을 살펴보면, '산업연수생제도'에 대해 “외국 인력의 편법 활용, 사업장 이탈, 임금 체불, 외국인 근로자의 인권 침해 등의 문제를 야기했다”고 평가하고 있다. 고용허가제를 새로 도입함으로써 산업연수생제도의 폐해가 일부 해결된 것은 사실이지만, 고용허가제 역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주노동자를 옭아매는 조항 때문에 비판을 받고 있는 것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조항은 바로 사업장 변경 권한이 사업주에게 유리하게 되어 있다는 점이다(외국인고용법 제25조 제1항). 사업장 변경 제한은 우리 헌법에서 보장하는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할 뿐만 아니라 노동자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강제 노동을 초래할 위험이 있다는 지적을 받아 왔다. 출처: 우춘희, 깻잎 투쟁기: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한 1500일 (교양인, 2022), 116-117. |
3) 고용허가제의 기본원칙과 차별 문제
외국인근로자는 사업주와의 사용종속관계에서 근로를 제공하는 자로서 실질적으로 대등한 관계를 실현하기 위해 외국인고용법 등 노동법 상 보호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외국인고용법은 임금 등 근로조건ㆍ사업장변경ㆍ근로보장 등 외국인근로자에게 개별적으로 보장되어야 하는 문제들을 특수하게 인식하고, 이들에 대한 관리 및 보호체계를 새롭게 재구성하고 있다.〘4〙 외국인고용법에 의거하여 실시하고 있는 외국인 고용허가제도는 국내에서 내국인 노동자를 구하지 못한 사용자들이 정부의 허가를 받아 외국인력을 고용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고용허가제도는 내국인의 고용기회를 보장하고 국내 노동자의 고용기회 침식을 방지하는 범위 내에서 최소한으로 외국인력을 도입하되(보충성 원칙/노동시장 보완성의 원칙), 외국인근로자에게 근로기준법 상 근로자 신분을 부여하여 국적에 따른 차벌을 철폐하는 것(차별금지 원칙/균등대우의 원칙)을 핵심 내용으로 한다.〘5〙
🔲 보충성 원칙(노동시장 보완성의 원칙)
내국인 근로자를 고용하지 못한 기업에 대해 외국인근로자를 고용할 수 있도록 허가하는 것이다. 이는 내국인의 고용기회를 보장하여 국내 노동시장 잠식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제6조(내국인 구인 노력) ① 외국인근로자를 고용하려는 자는 「직업안정법」 제2조의2제1호에 따른 직업안정기관(이하 “직업안정기관”이라 한다)에 우선 내국인 구인 신청을 하여야 한다. ② 직업안정기관의 장은 제1항에 따른 내국인 구인 신청을 받은 경우에는 사용자가 적절한 구인 조건을 제시할 수 있도록 상담ㆍ지원하여야 하며, 구인 조건을 갖춘 내국인이 우선적으로 채용될 수 있도록 직업소개를 적극적으로 하여야 한다. |
세계사회는 일정한 영토와 그곳에 사는 국민으로 구성된 독립된 정치조직으로서의 국민국가로 구성되어 있다. 각 국가는 자국의 영토에 대한 주권을 지니며, 그 국민에 대하여 배타적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국민국가의 주권을 바탕으로 내국인의 안전 보장(ex. 범죄자, 전염병 감염자 등에 대한 입국 제한)과 일자리 보호를 위해 국경통제가 이루어진다. 사회는 국경을 단위로 분할되어 있고, 이에 따라 인권은 인간이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와 국민 자격을 갖추어야 보장되는 권리로 구분된다.
◽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6〙
누구나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니고 있으며 행복추구권을 가진다. 또한 국내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은 성별ㆍ종교ㆍ사회적 신분ㆍ장애ㆍ나이ㆍ출신지역ㆍ출신국가ㆍ
용모ㆍ신체조건ㆍ혼인여부ㆍ임신 또는 출산ㆍ가족상황ㆍ인종ㆍ피부색ㆍ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ㆍ성적지향ㆍ병역 등에 의해 고용, 재화, 용역 등의 공급이나 이용에서 차별을 당하지 않을 권리(평등권)를 가진다. 각자가 자유로운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권리인 자유권도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권리로서 보장되는 것이 원칙이다.
◽ 국민 자격을 갖추어야 보장되는 권리〘7〙
정치적 활동을 비롯한 선거권ㆍ피선거권ㆍ공무담임권ㆍ국민투표권 등의 참정권은 당해 국민의 의사결정에 의거한 국가통치를 요청하는 국민주권의 원리에 따라 국민에게만 보장되고, 외국인에게는 참정권이 인정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또한 국가가 어떠한 자를 입국시킬지에 관한 결정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국제관습법 상으로 당연하게 인식되고 있기에 외국인에 대한 입국 허가 여부는 각 국가의 자유재량에 속하는 사안이며 각국 정부는 그 영토주권에 근거하여 외국인의 입국을 자유로의 금지하거나 제한할 수 있다. 즉 외국인에게 입국의 자유는 보장되지 않는 것이다. 한편 사회적 기본권은 원칙적으로 자국 영토 내 모든 사람에 대해 보장해야 할 성질이기는 하지만, 국가에게 적극적인 배려를 요구할 수 있는 권리라는 점에서 외국인에게는 사회적 기본권이 제한적으로 인정(ex. 사회보장기본법 제8조 국내에 거주하는 외국인에게 사회보장제도를 적용할 때에는 상호주의의 원칙에 따르되, 관계 법령에서 정하는 바에 따른다.)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건강하고 쾌적한 환경에서 생활할 권리(환경권), 신체적ㆍ정신적 건강을 향유할 권리(보건권) 등은 외국인도 당연히 누려야 하는 기본권으로 인정된다. 반면 근로의 권리는 외국인에게 보장하는 범위가 대폭 제한된다. 외국인이 한국에서 노동하는 것을 무한정으로 허용하는 경우 국민의 취업기회를 훼손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 고려되고 있다.
▪️ 직업의 자유(헌법 제15조)
❝직업의 자유 중 직장 선택의 자유(ex.일단 형성된 근로관계를 포기하고 직장을 이탈하는 것 등)는 인간의 존엄과 가치 및 행복추구권과도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만큼 단순히 국민의 권리가 아닌 인간의 권리로 보아야 할 것이므로, 외국인도 제한적으로라도 직장 선택의 자유를 향유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미 적법하게 고용허가를 받아 적법하게 우리나라에 입국하여 우리나라에서 일정한 생활관계를 형성, 유지하는 등 우리 사회에서 정당한 노동인력으로서의 지위를 부여받은 상황임을 전제로 하는 이상 외국인근로자에게 직장 선택의 자유에 대한 기본권 주체성을 인정할 수 있다.❞〘8〙
▪️ 근로의 권리(헌법 제32조 제1항)
❝헌법상 근로의 권리는 ‘일할 자리에 관한 권리’만이 아니라 ‘일할 환경에 관한 권리’도 의미하는데, ‘일할 환경에 관한 권리’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침해를 방어하기 위한 권리로서 외국인에게도 인정되며, 건강한 작업환경, 일에 대한 정당한 보수, 합리적인 근로조건의 보장 등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 등을 포함한다.❞〘9〙
즉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일할 자리에 관한 권리’의 경우 국민만이 그 기본권의 주체가 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일할 환경에 관한 권리’ 중 최소한의 근로조건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는 외국인 근로자도 그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 차별 문제
▪️ 근로계약에 있어 대등한 계약 당사자인지 여부〘10〙
외국인근로자의 국내 취업은 내국인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외국인 구직근로자 명단 중 특정인을 지명하면서 시작된다. 이후 국내에 입국한 외국인근로자는 산업인력공단에서 취업교육을 받고, 자신을 지명한 사용자를 만나서 근로계약을 체결하게 된다.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까지도 자신이 구체적으로 어떤 근로조건의 직장에서 일하게 될 지 거의 알 수 없는 상태인 것이다. 실제로 외국인근로자들이 자신들이 들었던 근로조건보다 훨씬 열악한 근로조건에서 일하고 있다고 진술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데 있어 실제적인 근로조건에 대해 정확한 정보가 제공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사업장 변경 제한〘11〙
고용허가제 아래 노동자의 의사에 따라 원칙적으로 3회까지 일터를 옮길 수 있으나, 여기에는 제한이 많다. 새로 이동하는 곳 역시 정부가 알선해주는 곳으로 가야만 하는 데다가 노동자의 귀책 사유는 없어야 하고, 무엇보다 사업주가 반드시 동의해줘야 한다. 사실상 노동자들의 자율적 선택권은 없다시피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아래에서 자세히 다룸.)
▪️ 미등록 외국인노동자
외국인근로자가 국내에서 취업을 하기 위해서는 출입국관리법이 정하는 바에 따른 법적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체류자격이 없거나 체류자격은 있지만 취업자격이 없는 경우, 국내에서 합법적인 취업활동을 할 수 없다. 체류자격이 없는 자에 대한 규제는 국경통제를 위한 국가의 권한으로 볼 수 있다.〘12〙 그런데 체류자격이 합법인지 불법인지 여부는 출입국관리법 상의 문제이며, 노동법상의 개념은 아니다. 즉 체류자격이 없거나 또는 취업자격이 없는 미등록 외국인근로자 역시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에 해당한다.〘13〙 미등록 외국인근로자 역시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되어 근로기준법의 보호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에 관하여 체류자격 혹은 취업자격의 불법 여부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
🔲 차별금지 원칙(균등대우 원칙)
노동관계법 등 적용에 있어 내국인근로자와 외국인근로자를 동일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것이다.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제22조(차별 금지) 사용자는 외국인근로자라는 이유로 부당하게 차별하여 처우하여서는 아니 된다. |
그러나 이를 위반했을 시의 벌칙조항이 없어 구체적인 실효성이 낮다.〘14〙 그동안 외국인근로자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외국인고용법이 개선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인권의 실질적 보장과 실현에는 여전히 한계가 있다.
🔳 차별 문제
▪️ 근로조건과 임금 등
❝근로계약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근로시간과 임금이다. 근로시간에 관한 규제는 근로기법이 정한 한도를 초과하는 과도한 근로시간을 부여하고 있는지 여부와 외국인에 대하여 내국인과 차별하여 근로시간을 규제하고 있는지 여부로 나눠진다. 한편 임금과 관련해서는 임금의 최하한을 규정한 최소임금법이 제대로 준수되고 있는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이 외국인근로자에게 적용되고 있지는 여부를 검토할 수 있다.❞〘15〙
관련 사례:
❝가장 심각한 것은 임금체불입니다. 모두 다 돈을 벌러 들어온 상황인데 정작 돈을 못 받는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건데요. 물론 국내 노동자들도 겪는 문제지만, 우리는 우선 말이 통하니까 정부 기관에 찾아가서 여러 항의를 할 수도 있고 고소를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외국인 노동자의 상당수는 한국어를 구사할 수 없는 분들이고 그렇다고 이들을 위한 통역 시스템이 갖추어졌다고도 말할 수 없는 겁니다. 무엇보다 외국인 노동자는 일터를 떠날 수가 없어요. 우리 한국 사람들 같은 경우에는 임금이 밀리면 당장 먹고 살아야 되니 다른 일터를 찾아 떠날 수도 있는데, 외국인 노동자 같은 경우에는 방금 설명드렸던 고용허가제 문제 때문에 일터를 아예 옮길 수 없는 상황입니다.❞〘16〙
▪️ 법규정의 존재, 그러나 실질적 보호의 부족
여성 이주노동자의 경우, 사업주로부터 또는 동료 이주노동자로부터 성희롱과 성폭력 피해를 입더라도 이를 증명하거나 피해사실을 호소하는 것조차도 어려운 경우가 많다.
출입국관리법 제25조의2 제1항 제2호 법무부장관은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외국인이 체류기간 연장허가를 신청하는 경우에는 해당 재판 등의 권리구제 절차가 종료할 때까지 체류기간 연장을 허가할 수 있다. 2.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2조제1항의 성폭력범죄를 이유로 법원의 재판, 수사기관의 수사 또는 그 밖의 법률에 따른 권리구제 절차가 진행 중인 외국인 |
위와 같은 규정이 있더라도 성희롱 또는 성폭력 가해자인 고용주의 압력, 동료 이주노동자의 압박(“같은 나라 사람인데 신고할 수 있겠냐” 등)으로부터 벗어나 피해를 신고할 수 있도록 돕는 실질적인 지원이 없다면 피해자가 구제를 받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 사업주의 차별적 인식
❝한국 사회는 외국인근로자에 대한 사회문화적 배타성이 높다. 사업주들은 그들이 고용한 외국인근로자가 우리나라보다 저임금인 국가라는 점에서 내국인 근로자와 동일임금을 적용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러한 차별적 인식을 바탕으로 외국인근로자의 최저임금 적용대상제외를 요구하거나, 임금체불을 저지르기도 한다. 또한 외국인근로자는 저임금으로 장시간 근로를 시켜도 괜찮다는 차별의식 또한 존재하고 있다.❞〘17〙
▪️ 이주노동자의 주관적 차별감
한국사회 내의 외국인근로자는 외모와 언어차이로 인한 식별 가능성, 배타적 순혈주의가 강한 사회적분위기 속에서의 외국인 유입에 대한 거부감과 차별인식의 존재 등으로 인하여 소수자적 정체성을 갖는다.〘18〙
4) 불법이 되면서 나는 오히려 자유로워졌다
캄보디아 여성 노동자 따비(가명, 20대)씨는 2018년 고용허가제로 들어와 한 농장에서 3년 넘게 일하는 중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부터 따비씨는 ‘성실근로자’로 인정받아 오래오래 한국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해왔다. 그런 그가 사업장을 바꾸고 싶다고 도와 달라고 했다. “언니, 사장님에게 말해줘요. 저는 사업장을 바꾸고 싶어요. 사장님이 월급을 155만원, 160만원을 줘요. 비닐하우스 기숙사비 25만원을 내요. 월급이 너무 적고, 기숙사비는 너무 많아요. 여기서 더 이상 일하고 싶지 않아요. 사장님에게 (사업장 변경에) 사인해달라고 언니가 말해줘요.”
합법 체류 노동자인 따비 씨는 비닐하우스 안 샌드위치패널로 지은 집에 살고 있었다. 각종 세금을 더해 기숙사비로 한 달에 25만원이 임금에서 공제되었다. 따비 씨가 하루 9~10시간 일하며 한 달에 두 번 쉬고 실제로 받는 임금은 약 160만원 정도였다. 겨울에는 해가 짧아져서 일을 늦게까지 하지 못해 130만~135만원을 받았다. 코로나19로 인한 일손 부족으로 미등록노동자의 임금은 높아져 갔지만 합법 체류 노동자의 열악한 상황은 그대로였다. 내가 따비 씨의 사업주에게 전화해 상황을 전하자 그는 내게 하소연했다. “사장님이 하루에 9~10시간씩 일을 시키고 월급은 8시간만 준 것을 따비 씨가 문제 삼을 수도 있고, 각종 세금이나 기숙사비 명목으로 너무 많이 공제한 것도 문제 삼을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렇게 일을 크게 하고 싶지 않아서 이렇게 전화드린 거예요.” “ 당신, 한국 사람 아니야? 한국 사람이면 한국 사람 편들어야지! 일손이 없어서 작물 수확 못하면 우리는 다 포기해야해. 1년 농사 망치는 거라고!” 사업주의 답답함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작물은 심어 놓았는데 관리하고 수확해야 할 노동자가 갑작스럽게 그만둔다고 하면 당장 일손을 구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당혹스럽고 화가 날 것이다. 그런데 사업주도 근로계약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온전히 노동자만 탓하기는 어려웠다. 따비 씨의 근로계약서에는 하루 8시간 근로, 한 달 4~5일 휴일이 명시되어 있었지만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따비 씨의 집 정도면 각종 세금을 더해도 기숙사비는 보통 20만원 이었기에 25만원은 비싼 편이었다. 출처: 우춘희, 깻잎 투쟁기: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한 1500일 (교양인, 2022), 166-169. 이주노동자 알선은 고용노동부에서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사설 인력사무소(직업소개소)를 통해 일자리를 구하는 외국인은 미등록이주민일 가능성이 높다. 현장에서는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쉬쉬하고 있다. “인력사무소에서 사람을 쓰는 거 불법인데, 혹시 걱정되진 않으세요?” 라고 묻자 깻잎 농사를 짓는 박수현 씨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투자를 해놨는데 놀 수는 없잖아요. 우선은 어쩔 수 없이 인력사무소에서 사람을 받아서 써야죠.” 인력사무소 사장 김동규 씨(가명, 40세)는 채소나 과일 주산지에는 이미 최저임금보다 높은 금액으로 인건비가 책정되어 있다고 말했다. 시설작물의 경우에는 하루 9시간을 일하면 8만 원 정도 받는다고 했다. 2020년 기준 최저임금과 비슷한 수준이었다(물론 여기서 중개 수수료로 인력사무소에 1만 원 정도를 낸다). 아이러니하게도 인력사무소의 세계에서 미등록 노동자들의 노동력은 최저임금이 보장되어 있었다. 인력사무소의 노동자들은 터무니없이 낮은 돈을 주는 곳에서는 일하지 않는다고 했다. 제대로 된 돈을 받고 일하는 것, 곧 자기가 생각하는 기준에 따라 일할 곳을 정하는 것. 김동규 씨 의 말마따나 이곳에서는 그들의 ‘인권’이 보호되고 있었다. 출처: 우춘희, 깻잎 투쟁기: 캄보디아 이주노동자들과 함께한 1500일 (교양인, 2022), 170-175. |
5) 고용허가제는 현대판 노예제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고용허가제로 한국에 들어와 일하고 있는 이주노동자 5명이 “사업장 이동제한은 위헌”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이주노조와 이주인권단체 등은 2020년 3월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고용허가제에 따른 사업장 변경 제한은 국가권력이 노동자와 사용자간의 사적 관계에 개입해 강제노동을 조장하고 있다”며 “고용허가제의 사업장 변경 제한은 반드시 철폐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들이 헌법소원을 제기한 조항은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란 법률’ 제25조 제1항과 제4항 및 고용노동부고시 ‘외국인근로자의 책임이 아닌 사업장 변경 사유’ 제4조, 제5조 및 제5조의 2 이다. 헌법재판소가 2011년 고용허가제 사업장 변경제한 조항에 대해 기각결정을 내린지 9년 만에 헌법소원을 다시 청구하는 것이다. 이번 헌법소원에 공익인권법재단공감, 금속노조 법률원, 민변 노동위원회 등 변호사 52명이 대리인단에 참여했다. 이주인권 단체들은 고용허가제의 사업장 변경 조항이 헌법 10조가 규정한 ‘인간의 존엄과 가치와 행복추구권’과 ‘강제근로를 금지’한 헌법 제12조 제1항 그리고 헌법 제23조가 규정한 ‘근로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출처: 변백선, "“이주노동자 사업장 이동제한은 위헌이다...고용허가제 헌법소원 제기," 노동과 세계. 2020년 3월 18일. |
➨ 헌법재판소는 2011년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고용허가제 사업장 변경제한 조항에 대해 기각결정(합헌)을 내렸다. (합헌 의견 7명, 위헌 의견 2명)
헌법재판소 2021. 12. 23. 선고 2020헌마395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제25조 제1항 등 위헌확인]
1️⃣ 사건의 개요
청구인들은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한 고용허가를 받아 현재 대한민국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근로자들이다.
◽ 청구인 흐○○ (캄보디아 국적의 외국인)
2019. 12. 18. 대한민국에 입국하여 12. 23.부터 ○○시 소재 ○○에서 근무하고 있다. 사용자가 근무시간을 일방적으로 변경하여 연장근로수당 없이 연장근로를 시키고 있고, 기숙사비를 추가로 공제하여 근로계약서상 통상임금보다 적은 월급을 지급하였다고 주장한다.
◽ 청구인 추○○ (몽골 국적의 외국인)
2018. 12. 26. 대한민국에 입국하여 2019. 1. 22.부터 안성시 소재 태광산업 주식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사용자가 건설기계조종사면허가 없는 청구인에게 무면허 건설기계(지게차) 조종을 강요하였고, 협박성 발언을 일삼는 등 부당한 대우를 하였다고 주장한다.
◽ 청구인 트○○ (베트남 국적의 외국인)
2016. 4. 12. 대한민국에 입국하여 ○○시 소재 ○○에서 근무하고 있다. 취업활동 기간 연장을 위해 사용자의 재고용 허가 요청이 필요했기 때문에 사용자의 요구로 근로계약 불이행 위약금 명목으로 300만원을 사용자에게 예치하였고, 이후 근로감독관의 시정지시를 통해 위 금액을 돌려받을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 청구인 나○○ (우즈베키스탄 국적의 외국인)
2013. 12. 24.경 대한민국에 입국하여 ○○시 소재 ○○에서 근무하였다가, 2018. 12. 19. 성실 외국인근로자로 재입국하여 같은 사업장에서 자동차 부품 화학처리 도금업무를 하고 있다. 사용자가 보호장구를 지급해 주지 않아서 인체에 유해한 유기용제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 청구인 미○○ (미얀마 국적의 외국인)
2013년경 ○○시 소재 주식회사 ○○에 입사한 뒤 성실 외국인근로자로 재입국하여 현재 같은 사업장에서 근무하고 있다. 2020. 1. 31. 위 공장에서 10명이 사상한 산재 사고를 목격한 후 사용자에게 사업장 변경을 요청하였으나 사용자가 이를 거절하였다고 주장한다.
청구인들은 2020. 3. 15. 자신들이 처한 위 각 상황이 외국인고용법 제25조 제1항, 제25조 제4항, 고용노동부고시 ‘외국인근로자의 책임이 아닌 사업장 변경 사유’ 제4조, 제5조, 제5조의2가 규정한 사업장 변경 사유에 해당하지 않아 사업장을 변경하지 못한 채 근로를 계속하여야 하므로 청구인들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주장하면서, 위 조항들의 위헌확인을 구하는 이 사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하였다.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 제25조(사업 또는 사업장 변경의 허용) ① 외국인근로자(제12조 제1항에 따른 외국인근로자는 제외한다)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사유가 발생한 경우에는 고용노동부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직업안정기관의 장에게 다른 사업 또는 사업장으로의 변경을 신청할 수 있다. 1. 사용자가 정당한 사유로 근로계약기간 중 근로계약을 해지하려고 하거나 근로계약이 만료된 후 갱신을 거절하려는 경우 2. 휴업, 폐업, 제19조 제1항에 따른 고용허가의 취소, 제20조 제1항에 따른 고용의 제한, 제22조의2를 위반한 기숙사의 제공, 사용자의 근로조건 위반 또는 부당한 처우 등 외국인근로자의 책임이 아닌 사유로 인하여 사회통념상 그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근로를 계속할 수 없게 되었다고 인정하여 고용노동부장관이 고시한 경우 3.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가 발생한 경우 ④ 제1항에 따른 외국인근로자의 사업 또는 사업장 변경은 제18조에 따른 기간 중에는 원칙적으로 3회를 초과할 수 없으며, 제18조의2제1항에 따라 연장된 기간 중에는 2회를 초과할 수 없다. 다만, 제1항제2호의 사유로 사업 또는 사업장을 변경한 경우는 포함하지 아니한다. |
2️⃣ 구체적 판단
외국인력 도입에 관한 제도를 마련함에 있어서는 광범위한 입법재량이 인정되고, 외국인근로자의 직장선택의 자유는 입법자가 정책적 판단에 따라 법률로써 그 제도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규정할 때 비로소 구체화된다. 따라서 외국인근로자의 사업장 변경사유를 제한하고 있는 이 사건 사유제한조항은 그 내용이 합리적인 근거 없이 현저히 자의적인 경우에만 헌법에 위반된다고 할 수 있다.
- 이 사건 사유제한 조항의 내용이 합리적 근거 없이 현저히 자의적인가?
◽ 이 사건 사유제한조항은 원칙적으로 외국인근로자의 의사에 따른 사업장 변경을 금지하고 예외적 사유가 있는 경우에만 허용함으로써 중소기업 등이 안정적으로 노동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고, 내국인근로자의 고용기회나 근로조건을 교란하는 것을 방지하며, 외국인근로자에 대한 효율적인 고용관리를 도모하기 위한 것이다. 이 사건 사유제한조항이 사용자가 정당한 사유로 근로계약기간 중 근로계약을 해지하려고 하거나 근로계약이 만료된 후 갱신을 거절하려는 경우에만 사업장 변경을 허용하고, 외국인근로자가 근로계약을 해지하거나 근로계약 갱신을 거절하는 경우에는 사업장 변경을 허용하지 않고 있는 것은 위와 같은 입법목적에 기여하는 것으로서 다음과 같이 입법자의 재량 범위를 넘어 명백히 불합리하다고 볼 수 없다.
(현재 비전문취업의 외국인력을 도입하는 업종은 제조업, 건설업, 농축산어업 및 건설폐기물처리업 등 일부 서비스업이며, 제조업의 경우 상시근로자 300명 미만 또는 자본금 80억 원 이하의 기업으로 제한되어 있다. 이들은 국민경제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지만 업종의 특성상 내국인근로자를 구하기 어렵고 대체로 규모가 영세한 사업장으로서 노동력의 안정적 확보가 절실한 상황에 있다. 그런데 외국인근로자를 고용하고 있는 다수의 사업장이 외국인근로자 고용 시 애로사항으로 ‘잦은 사업장 변경’을 언급하고 있고, 특히 비전문취업 외국인근로자는 내국인근로자는 물론 외국국적동포에 비해서도 의사소통이 어렵고 문화적 차이가 있어 근무기간이 짧은 경우 노동생산성이 낮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외국인근로자가 근로계약을 해지하거나 갱신을 거절하고 자유롭게 사업장 변경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한다면, 사용자로서는 인력의 안정적 확보와 원활한 사업장 운영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 이 사건 사유제한조항은 외국인근로자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른 근로관계 해소를 사업장 변경 사유로 인정하고 있지 않지만, 외국인근로자의 책임 없는 사유에 따른 사업장 변경을 비교적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또한 부상 또는 질병 등으로 외국인근로자가 해당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계속 근무하기는 부적합하나 다른 사업 또는 사업장에서 근무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도 사업장 변경을 허용하고 있다. 이처럼 이 사건 사유제한조항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고용허가제에 따른 사업장 이동 제한 원칙을 견지하면서도 외국인근로자에게 필요한 경우 사업장 변경을 허용하고 있으므로, 그 제한에는 합리적 이유가 있다고 볼 수 있다.
◽ 물론 외국인근로자의 사업장 변경에 엄격한 사유를 요구함으로써 제한되는 사익은 결코 작지 않다. 외국인근로자 역시 객관적으로 열악하거나 본인에게 부적합한 근로환경에서 벗어나 사업장을 옮길 필요가 있고, 변경된 사업장에서 더 높은 노동생산성을 발휘함으로써 결과적으로 국민경제에 더욱 이바지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고용허가제를 통해 입국하는 외국인근로자들은 입국 당시부터 취업할 수 있는 사업장이 제한되어 있고 향후 사업장 변경을 함에 있어서도 사유와 횟수에 제한이 있다는 사실을 인지·감수하고 입국한 것으로 볼 수 있으므로, 그 제한이 상대적으로 용이하다고 볼 수 있다. 반면, 사용자의 근로계약 해지 또는 갱신거절이 없었음에도 외국인근로자가 자유롭게 사업장 변경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은 현행 고용허가제의목적과 체계에 반하고 외국인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의 현실적 상황을 무시하는 것이 될 수 있다.
➨ 따라서 청구인들의 심판청구 중 이 사건 사유제한조항 및 이 사건 고시조항에 대한 심판청구는 이유 없으므로 이를 모두 기각하기로 한다.
🟥 비판
- ‘직장선택의 자유’ 관련
▪️ 헌법재판소는 ‘그 성질상 국적을 이유로 하여 기본권을 부정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ex. 직장선택의 자유)’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이렇게 헌법재판소가 어떤 기본권에 대해 보편성이 인정되는 인간의 권리로서 기본권 주체성을 인정하면서 동시에 외국인을 국민보다 불리하게 처우해도 명백히 불합리한 것은 아니라고 하는 태도는 자의적이며 자기모순적이라는 비판이 제기된다.〘19〙
▪️ ❝헌법재판소는 사업장 변경 제한에 관한 조항들이 “비교적 중대한 근로조건 위반과 부당한 처우로 그 사유를 한정하고 있어, 그에 해당하지 않거나 미치지 못하는 경우 외국인근로자가 사업장 변경을 할 수 없는 현실적인 문제는 있다”고 함으로써 열악한 근로조건 하에 있는 외국인근로자가 자유의사에 반하여 일하도록 강제하는 효과가 있음을 알면서도, 이러한 강제근로의 위헌성을 살피는 대신 사용자의 이익을 더욱 비중있게 고려하였다. 이는 “외국인근로자가 사업장을 변경하지 못해 제한되는 ‘사익’이 결코 작지 않다”고 하면서도, “외국인근로자가 자유롭게 사업장 변경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은 현행 고용허가제의 목적과 체계에 반하고, 외국인근로자를 사용하는 사업장의 현실적 상황을 무시하는 것이 될 수 있다.”는 내용에서 드러난다. 고용허가제의 핵심 내용(노동시장 보완성의 원칙/균등대우 원칙) 중 균등대우 원칙을 외면하였고, 고용허가제가 애초에 근로자의 권리보다는 사용자의 이익을 도모하기 위한 것으로 설계됐다고 판단될 수 있는 것이다.❞〘20〙
- 근로의 권리 중 ‘일할 환경에 관한 권리’ 관련
▪️ ❝이번 사건은 명백히 근로의 권리 중 ‘일할 환경에 관한 권리’와 관련된 사안인 ‘근로조건 위반’과 ‘부당한 처우’의 인정범위에 관한 다툼을 다룬 것이었다. 예컨대 청구인 흐○○(캄보디아 국적의 외국인)의 사례와 같이, 사용자가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임금보다 적은 월급을 지급하는 것은 근로기준법 제19조의 위반사항으로서 근로자는 손해배상청구와 근로계약해지가 가능하다. 하지만 이는 외국인근로자가 사업장 변경을 신청할 수 있는 ‘근로조건 위반’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이 사건 고시조항에 의하여 근로기준법 등에서 정한 최저기준보다 더 낮은 근로조건 하에 있더라도 사업장 변경이 허용되지 않아 노동자가 근무를 계속 강제당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따라서 헌법재판소는 근로의 권리 침해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타당했다.❞〘21〙
- 평등권 관련
▪️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 사유제한조항과 관련하여 “외국인근로자가 내국인이나 동포에 비해 의사소통이 어렵고 문화적 차이가 있어 근무기간이 짧은 경우 노동생산성이 낮다”고 하였는데, 이는 비동포 외국인에 대한 불리한 처우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보여진다. 또 “최근 불법체류자가 급격히 늘어나는 상황에서 외국인근로자의 효율적인 관리 차원에서도 사업 장의 잦은 변경을 억제하고 취업활동 기간 내에서는 장기 근무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하였는데, 이는 외국인근로자가 사용자에게 피해를 끼칠 수 있어 규제가 필요한 존재라는 관점을 담고 있다고 볼 수 있다.❞〘22〙
▪️ ❝그런데 이와 같은 이유로 곧바로 사업장 변경 제한이 정당화된다고 말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예컨대 정말로 의사소통과 문화적 차이가 문제라면, 입법자가 의사소통을 돕고 문화적 차이를 상호 이해하도록 지원하는 방법이 아니라 외국인근로자의 직장 이동을 금지시키는 규제적 방법을 채택한 것이 과연 합리적인지 설명을 해야 한다. 만약 사업장 변경 제한이 불법체류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면, 직장 이동을 막는 것이 어떻게 불법체류를 예방하는지에 관한 논리적인 설명이 필요하다. 이때, 사업장 변경 제한이 외국인근로자를 열악한 노동조건에 강제로 종속시키는 불합리성 때문에 오히려 ‘불법체류(미등록이주)’를 발생시킨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검토해야 한다.❞〘23〙
🟥 대안 (다양한 견해 중 일부를 소개)
▪️ 법률이 정하는 정당한 사유가 발생하는 한 횟수의 제한을 두지 않고 사업장을 이동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의견이 제기된다.〘24〙
▪️ 사업장 이동의 가부는 해당 외국인노동자의 경제적 이익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항임에도, 사업장 이동 시 구직을 할 수 있는 기간이 2개월로 매우 짧기 때문에 외국인근로자가 부당한 처우에 대하여 신속하게 권리구제를 할 수 있도록 절차를 마련하여야 한다. 해당 구제절차가 진행되는 동안에는 2개월의 구직기간은 정지되는 것으로 할 필요가 있다.〘25〙
6) 문제 개선을 위한 노력들
“같은 인간으로서 노동자로서 평등한 권리가 절실한 ‘이주와 난민의 시대’에, UN이 정한 세계 이주노동자(이주민)의 날을 맞이하여, 우리는 전체 이주민의 인권과 노동권 보장을 강력히 촉구한다.”〘26〙
이주노동 운동단체들이 2022년 국제 이주자의 날을 맞아 낸 성명서의 일부이다. 이주노동 운동단체 및 인권단체들은 한국 사회에서 이주노동자들이 처한 차별의 현실을 알려내고 이주노동자들의 인권보장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인권단체들에서는 3월 21일 인종차별철폐의 날, 8월 전국이주노동자대회, 12월 18일 국제 이주자의 날에 행사를 개최하고 있으며, 이주노동자 지원, 이주노조 등을 통한 노동운동 활동, 다양한 문화운동 및 글로벌마을과 같은 지역공동체 운동을 통해 이주노동자 인권보장을 위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2022년 국제 이주자의 날에서 제기된 요구안은 다음과 같다.〘26〙
2022년 국제 이주자의 날 요구안 - 이주노동자 사업장 이동의 자유 보장하라! 노동허가제 실시하라! - 모든 이주민, 이주노동자 인권과 노동권을 보장하라! - 숙식비 강제징수지침 폐기하고 인간다운 기숙사 보장하라! - 농어업노동자 차별하는 근로기준법 63조 폐기하라! - 퇴직금은 국내에서 지급하라! - 이주여성에 대한 차별과 폭력 중단하라! - 이주노동자 산재예방 근본대책 마련하라! - 미등록 노동자 강제단속 중단하고 체류권 보장하라! - UN 이주노동자 권리협약 비준하라! - 인종차별 중단하고 차별금지법 제정하라! |
이주노동 운동단체들은 이주노동자 관련 제도의 문제점들을 지적하고, 이를 공론화하여 사회적 담론을 바꾸고 제도 개선을 이끌어내는데 앞장서고 있다. 지금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보았던 고용노동제와 관련하여, 정부에서 2023년 7월 5일 이주노동자 사업장변경을 ‘권역별 단위’내에서만 할 수 있게끔 제한을 강화한 것에 대해 인권단체들에서 앞장서 반대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27〙 2023년 10월 19일 신규 모집된 이주노동자들부터 적용되는 이 제도는 사업주 동의 없이 사업장 변경이 허용되지 않는 현행 고용허가제 내에서 지역 제한까지 추가하였다. 이주노동자의 사직할 자유를 막으며 비자발적인 노동을 강제노동으로 비판받아온 고용허가제에 거주이전의 자유까지 침해한 사업장 변경 제한 강화는 국제인권규약 및 권고에도 위배되는 사항이다. 다수의 국제인권기구는 수차례에 걸쳐 이주노동자들의 사업장변경을 극히 제한하는 대한민국의 현행 고용허가제는 이주노동자를 열악한 근무조건에서 사실상 강제로 노동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한다는 취지에서 국제인권규범에 명백히 위반된다는 점을 지속적으로 지적해왔다. 전국의 이주노동인권사회단체들은 기본권 가중 침해 조치를 규탄하며 즉각적인 철회를 요구해왔으며, 2023년 12월 6일 국가인권위원회에 관련 의견서를 제출하였다.〘28〙
참고문헌
〘1〙이학춘, 고준기, "고용허가제를 둘러싼 주요 갈등과 쟁점 및 향후 법적 과제: 기본원칙을 중심으로," 노동법논총 제27집 (2013): 295.
〘2〙이학춘, 고준기, 위의 글, 295.
〘3〙somi, "이주민과 인권," 이주민과 함께 Solidarity With migrants, 2023년 12월 17일 접속, https://somi.or.kr/이주민과-인권/.
〘4〙이학춘, 고준기, 앞의 글, 295.
〘5〙설동훈, "외국인노동자와 인권: ‘국가의 주권’과 ‘국민의 기본권’ 및 ‘인간의 기본권’의 상충요소 검토," 민주주의와 인권 제5권, vol.2 (2005): 40.
〘6〙설동훈, 위의 글, 49-50.
〘7〙설동훈, 위의 글, 50-54.
〘8〙헌법재판소 2011. 9. 29. 선고 2009헌마351 결정.
〘9〙헌법재판소 2007. 8. 30. 선고 2004헌마670 결정.
〘10〙전형배, "외국인근로자의 노동인권," 노동법논총 제18집 (2010): 136-139.
〘11〙강민경, "“같은 한국, 다른 인권”...‘차별 그늘 밑’ 외국인 노동자," YTN, 2023년 10월 6일.
〘12〙설동훈, 앞의 글, 43.
〘13〙대법원 2015. 6. 25. 선고 2007두4995 판결.
〘14〙이학춘, 고준기, 앞의 글, 324.
〘15〙전형배, 앞의 글, 139.
〘16〙강민경, 앞의 기사.
〘17〙이학춘, 고준기, 앞의 글, 325-327.
〘18〙이학춘, 고준기, 위의 글, 316.
〘19〙김지혜, "외국인근로자에 대한 재판의 공정성: 사업장 변경 제한에 대한 헌법재판소 2021. 12. 23. 2020헌마395 결정 비판," 사회법연구 no.46 (2022): 571.
〘20〙김지혜, 위의 글, 572-574.
〘21〙김지혜, 위의 글, 566-568.
〘22〙김지혜, 위의 글, 578-579.
〘23〙김지혜, 위의 글, 579-581.
〘24〙전형배, 앞의 글, 145-146.
〘25〙전형배, 위의 글, 146.
〘26〙이주노동자노동조합, “2022 세계 이주노동자의 날 기념대회 선언문,” 2022년 12월 28일, http://mtu.or.kr/bbs/board.php?bo_table=4001&wr_id=41&page=2
〘27〙김세영, “이주인권단체 "'특정 지역 내 사업장만 종사' 정책은 기본권 침해하는 강제노동",” MBC뉴스, 2023년 12월 6일, https://imnews.imbc.com/news/2023/society/article/6550605_36126.html
〘28〙이주노동자노동조합, “고용허가제 이주노동자 사업장변경 지역제한에 대한 의견서”, 2023년 12월 7일, http://mtu.or.kr/bbs/board.php?bo_table=4001&wr_id=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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